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제(중국 신화) (문단 편집) == 상세 == 황제는 '''화하(華夏)'''라는 실체를 구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전설상의 군주로, 사마천은 삼황오제에서 삼황 부분은 전설이라고 치부해 아예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오제부터는 <본기>(本紀)로 저술했으므로 이 부분부터는 역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사마천도 이 부분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사기》는 본디 서주 시대부터 비로소 진정한 역사 시대로 간주하지만, [[유교]]적인 정통성 계승의 관점에서 최소한 한 가지 구심점이 필요했고, 그런 이유로 오제는 예외적으로 <본기>를 서술, 역사 시대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황제라는 칭호는 '황천상제'(黃天上帝)를 줄인 것으로 '천상의 위대한 신'이란 뜻이다. 이에 걸맞게 천상과 지상을 호령하는 위대한 신이자 군주였다고 한다. 끝없는 싸움과 투쟁의 결과로 지배자가 되었기에, 중국에서 황제 공손헌원을 묘사할 때에는 한손에 항상 [[헌원검]][* 황제 공손헌원의 칼로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으로 만든 칼이라고 한다. 별거 아닐 수가 있으나, 그 당시에 강한 철이라는 것은 농업과 전쟁의 필수요인이었기에 황제의 검은 전쟁은 물론 농경에도 크나큰 영향력을 미쳤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물건이다.]이라고 하는 칼을 쥔 전쟁군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고대의 다른 전승에 나오는 황제 헌원씨는 인간이 아닌, 확실히 신(神)이다. '''제(帝)'''는 본래 인간의 군주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었다. 고대 동아시아의 종교는 가문의 조상을 다른 종교의 신에 상당하는 대상으로 섬기는 구조(가부장이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였는데, 이 조상신을 부르는 이름이 제(帝)였으며, 좀더 정확히는, 상나라의 가장 고귀한 가문인 자(子)성 왕실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帝)라고 불렀다.[* 《사기》의 <은 본기>에서도 상 왕조의 태조 [[탕왕]]은 시조인 설의 14대손이고, 설의 아버지는 오제 중 [[제곡]] 고신씨, 제곡의 증조부가 황제 헌원씨로 기록되어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관우. 《[[삼국지]]》의 그 관우이다. 후에 신으로 봉해진 관우의 별칭은 관제, 관성대제 등으로 제의 호칭을 땄다. 왕족도 아닌데 제란 호칭이 붙을 수 있는 한 가지 사례이다.] 따라서 노란(黃) 제(帝)라고 불리는 존재가 본래 인간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존재를 고대의 위대한 인간 군주로 보는 시각이 퍼진 이래로, 책세상에서 펴낸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 신화》에 나오듯이 헌원은 역사적으로 수도 없이 덧칠되었다. 《[[포박자]]》에 보면 황제가 동서남북 사방의 여러 나라의 [[신선]]들을 만나 가르침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개중에는 청구국(고대 한국)의 [[자부선인]]이란 신선도 있다. 참고로, 상나라를 엎고 개국한 주나라의 희(姬)성은 자신들의 조상신을 '''천(天)'''으로 칭하며 하늘에 대입하고, 이것으로 제(帝)를 대체하는 프로파간다를 행하였다. 천자라는 명칭도 이에서 유래되었다. 황제 공손헌원은 신화적으로 창조신이자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도구들을 만들어낸 발명의 신이기도 하며,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글자를 배포한 것은 물론, 천문과 역산 등의 다양한 기술과 생활양식을 구성해내어 백성들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황제는 중국의 발전에 큰 힘을 실은 인물로 평가되면서도, 중국인들은 그를 민족의 시조이자 최초의 황제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신화상에서 황제, 즉 신으로서 황제 공손헌원은 얼굴이 4개 있어 동서남북으로 자신의 땅을 바라볼 수가 있었고, 그가 움직일 때에는 많은 동물들이 행렬을 뒤따랐다고 한다. 황제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왕위를 내려놓고 수련하여 신선이 되어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단순히 얼굴이 넷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름에 누를 황(黃)자가 들어가는 신답게 노란 용, 즉 황룡의 모습으로도 묘사되곤 한다. 노란색은 황제가 흙의 기운을 지녔기 때문이고, 용이기 때문에 모든 기상현상 그 자체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즉, 황제는 비바람 등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었다.[* 어떠한 문헌에서는 본래 황제가 천둥과 번개도 관장하고 있었으며, 물을 다스리는 신이었다고도 한다.] 황제는 전설 속 곤륜산에서 머무는데, 천계와 곤륜산을 오가며 천하를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행 중에 토([[土]])를 관장하며, 그 자체로 전쟁의 신이었다고도 한다. 황제는 모든 신 위에 군림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귀신과 요괴들을 지배했다. 천하를 순시하다 동해 바닷가에 이를 때 백택이라고 하는 짐승으로부터 1만 1520종 귀신과 요괴들의 모습을 배웠기에 이후로 귀신과 요괴들은 전처럼 마음대로 날뛸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황제를 보필하는 신하인 후토는 유명(幽冥)세계의 통치자이자 귀신나라의 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황제는 신도와 울루에게 세계를 떠도는 귀신들을 다스리게 했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염제 신농의 뒤를 이어 차지한 중앙의 상제자리를 물러난 이후에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신 중 중앙의 자리에서 사방을 관리하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이 황제는 백성들의 질 높은 삶을 구축해낸 인물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들로부터 인정받은 덕망이 높았던 임금이라고 한다. 《사기》의 기록은 신이었던 황제를 위대한 인간 황제 공손헌원으로 역사화했다.《사기》에 따르면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이라 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하였으며, 남들이 걸음마도 떼지 못했을 때 이미 뛰어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근근히 쳐들어오면 막고, 나면 먹고 안 나면 굶는 느슨한 공동체 생활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창(무기)|창]], [[방패]], [[수레]]([[바퀴(도구)|바퀴]])[* 이름 헌원(軒轅)의 한자에 '수레 거(車)'가 들어간 것이 이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옷]], [[글자]], [[거울]], 60갑자, [[팔괘]] 등을 만들어 문명을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안 만든게 없다는 만능의 인물. 심지어 그의 스승들과 함께 [[한의학]]을 정리한 것이 《[[황제내경]]》이라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설이고, 훨씬 뒤에 황제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진 책이라는 게 정설이다. 거기다 내용도 상당 부분이 공손헌원이 신하이자 스승이었던 기백천사에게 '''질문하고 가르침을 받는''' 구조다. 《사기》에 따르면 황제 공손헌원에게는 아들 25명이 있었고, 그 중 14명이 부왕 공손헌원의 성을 이어받아 수천 년 후 황하 평원을 가득 채울 부족이 되었고, 중국 역대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역시 삼황오제이자 황제의 뒤를 이어 신들을 지배하게 된 [[전욱]] 고양씨, 동해의 신 우호와 북해의 신 우경, 대홍수를 다스린 곤과 [[우(하나라)|우]] 부자 등 이름난 신들과 영웅들을 비롯하여 중원의 한족과 변방의 일부 종족들이 바로 이 황제의 후예로, 이 때문에 황제 공손헌원은 중국인의 시조가 된다고 한다. 그가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을 때, 중국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세력은 농업의 아버지인 염제 [[신농]](神農)이었고, 노쇠한 신농의 나라를 북동에서 내려온 [[치우]](蚩尤)의 세력이 늘 노리고 있었다. 황제는 신농과의 주도권 싸움을 3차례 벌여 세 번 다 승리하고 거대한 연맹체를 구성, [[치우]]와 일대 결전을 벌여 결국 탁록 땅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 뒤 황제는 1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자신이 죽을 날을 선택하고 용을 타며 승천하였다고 한다. 그때 신하들이 같이 올라가려고 들어 용을 붙잡고 수염이 뽑혀서 떨어지는 등의 추태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아내는 총 4명이 있었다. 그중 조강지처이자 본부인이며 첫 번째 부인은 서릉씨(西陵氏) [[누조]](嫘祖)인데, 비단과 양잠을 발명했고 황제와의 사이에서 많은 자손을 두었다고 한다. 네 번째 부인은 모모(嫫母)라고 하는 여자인데 외모가 추했으나 거울을 발명했다고 한다. 수시로 바람도 피우고 다니며 결혼 생활을 개막장으로 해서 아내인 [[헤라]]의 속을 어지간히 썩였던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달리, 황제는 바람도 피우지 않았고 건전한 결혼 생활을 하였다. 황제의 존재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 힘들다. 설령 황제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다 만들었다는 것은 후세 사람들의 첨삭이 있었을 것이다. 단 그의 존재가 후세에도 '이상적인 군주'로서 추앙받았다는 것을 볼 때 그런 인물이 실제 있었다기보다는 그런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황제는 존재했다고 볼 수 있겠다. 워낙 대단한 인물로 묘사되고 동양에서 학술적 내용의 연원을 고대에서 찾는 경향이 있어 각종 학파의 시조가 되기도 한다. 황제는 여러 가지 진귀한 물건도 소유했었다. 그중에 현주(玄珠)라는 검붉은 구슬이 있었는데 세상만사를 꿰뚫어볼 수 있는 신통한 것이었으나 황제가 분실했다고 한다. 한 신통한 여인이 이 구슬을 얻어 황제가 되찾으려 군사를 보냈으나 여인은 이 구슬을 삼키고 바다에 몸을 던졌고, 곧 말의 머리를 한 해룡이 되었다고 한다.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은 황제가 집필한 서적이라고 전하는데, 모호한 말로 쓰여서 혹자는 병법서, 도사들은 도가의 경전, 문인들은 유가의 말을 적은 책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달리 함푸뉴로 불리는 것은 물론, [[토성]][* 점성술에서 [[토성]]은 언제나 법률과 조문과 연관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춥고 느리고 분리적이고,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고립,두려움,회의론,구실을 가져온다고 한다. 거기에 [[토성]]의 수축과 결정화 자체는 세계에 견실함을 만드는 것은 물론, 물리적인 모든 것과 원칙에 지속가능한 형태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한다. 거기에 고령의 죽음과 연관되어져있으며, [[태양]]처럼 아버지를 의미하기도 하나, 토성에서 말하는 [[아버지]]의 의미는 '''그의 자식들을 그의 뜻대로 만들려 하고, 그의 기준에 따르는 삶을 강요하는, 독재적이고 군림하려 드는 아버지'''를 상징하며, 그렇기에 아이들은 종종 그러한 지배에 삼켜지게 된다고 한다. 거기에, 토성과 농경의 관계는 곧 [[시간]]의 본질을 암시하며, 은퇴와 고령의 황혼기도 다스리며, 제한과 구조를 상징하며, 완벽을 추구하고, [[인간]]을 느리게 하고 무모한 결정을 하는 것을 제지하는 것은 물론, 인내와 자기훈련을 장려하는 것은 물론, 명확성과 구조를 제공하여 혼돈과 무질서에 대한 해독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모든 일에서 절제를 보존하고 사용케 하는 것의 상징하고, 모든 종류의 낭비와 탐닉을 혐오하며,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자 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토성은 역경,제한,한정,무의식적 두려움,법과 질서,방어력,인내심,겸손,책임,심각성,엄격,지구력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가 있으며, 그 자체로 카르마와 정의의 집행자임을 상징하며, 자아와 자아를 형성하는 형태와 구조를 뜻하며, 그 자체로 인생의 교휸, 규율, 비판, 경계를 뜻하기도 한다.]무모신이기도 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